OUR STORY
창립배경
무재해 전도사, 신문진 원장의 이야기
1978년 11월, 수원 삼성전자 흑백TV공장에 큰 불이 났었다고 합니다. 직원과 소방관 2명이 목숨을 잃었고, 물적 손실도 엄청났다고 합니다. 이 일이 당시 삼성전자 공무과장으로 근무하던 신문진 원장의 운명을 바꿔놓았습니다.
“저는 전기공학과를 나온 전기기술자였어요. 그 사건 뒤 ‘화재는 전기에서 출발한다’는 경영진 인식때문에 저를 방재과장 자리에 앉쳤어요. 알고 보니 그 화재 원인은 담뱃불로 인한 실화(失火)로 밝혀졌지만요.”
1978년부터 삼성전자 방재센터를 맡았던 신원장은 ‘국내 최초’ 타이틀이 붙는 여러가지 사업을 개발했습니다. 먼저 ‘전원 참여의 잠재 재해 발굴 운동’을 도입 했습니다. 이 운동으로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무재해 2700만인시(직원수×시간)를 달성했습니다. 2만명이라는 종업원 규모로는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1990년에는 110평 규모로 산업안전전시관도 만들었습니다. 산업안전공단도 생각지 못했던 사업으로, 당시 각 기업체에서 버스를 빌려 단체로 관광을 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1992년에는 무재해운동 1000만 서명운동도 이끌어냈습니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소방차를 구입해 운영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신원장은 명실상부 국내 무재해전도사 초창기 멤버인 셈입니다.
“저는 전기공학과를 나온 전기기술자였어요. 그 사건 뒤 ‘화재는 전기에서 출발한다’는 경영진 인식때문에 저를 방재과장 자리에 앉쳤어요. 알고 보니 그 화재 원인은 담뱃불로 인한 실화(失火)로 밝혀졌지만요.”
1978년부터 삼성전자 방재센터를 맡았던 신원장은 ‘국내 최초’ 타이틀이 붙는 여러가지 사업을 개발했습니다. 먼저 ‘전원 참여의 잠재 재해 발굴 운동’을 도입 했습니다. 이 운동으로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무재해 2700만인시(직원수×시간)를 달성했습니다. 2만명이라는 종업원 규모로는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1990년에는 110평 규모로 산업안전전시관도 만들었습니다. 산업안전공단도 생각지 못했던 사업으로, 당시 각 기업체에서 버스를 빌려 단체로 관광을 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1992년에는 무재해운동 1000만 서명운동도 이끌어냈습니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소방차를 구입해 운영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신원장은 명실상부 국내 무재해전도사 초창기 멤버인 셈입니다.
“영세기업 챙겨야 안전한국 가능”
1998년 12 월 삼성전자에서 나온 뒤 곧장 한국안전환경연구원을 만들어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 안전관리에 나섰습니다. 안전관리대행과 작업환경측정 등이 주업무입니다. 50인 이상 300인 미만 종업원을 둔 기업은 법으로 안전관리를 위탁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의 지론도 작은 기업을 챙겨야 진짜 안전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는 시민단체 활동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신원장은 1998년 경기 안전생활실천 시민연합을 만들어 공동대표를 맡아했습니다. 안전점검의 날 행사, 안전거리 캠페인, 어린이 교통안전교실 운영 등 다채로운 일을 벌입니다.
그는 “어린이 교통안전교육은 하루 200명, 연 6만명이 받고 있습니다.”고 뿌듯해했다. <매일경제신문 2004. 4. 24일자>
1998년 12 월 삼성전자에서 나온 뒤 곧장 한국안전환경연구원을 만들어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 안전관리에 나섰습니다. 안전관리대행과 작업환경측정 등이 주업무입니다. 50인 이상 300인 미만 종업원을 둔 기업은 법으로 안전관리를 위탁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의 지론도 작은 기업을 챙겨야 진짜 안전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는 시민단체 활동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신원장은 1998년 경기 안전생활실천 시민연합을 만들어 공동대표를 맡아했습니다. 안전점검의 날 행사, 안전거리 캠페인, 어린이 교통안전교실 운영 등 다채로운 일을 벌입니다.
그는 “어린이 교통안전교육은 하루 200명, 연 6만명이 받고 있습니다.”고 뿌듯해했다. <매일경제신문 2004. 4. 24일자>
회사 연혁
~1995
안전보건관리 불모지였던 1973년 신문진원장은 삼성전자에서 현장중심의 자율안전관리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재직시절인 지난 1981년 ‘전원 참여의 잠재 재해 발굴운동’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무재해 2700만인시를 달성하였고, 1987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산업안전전시관을 개관해 체험학습의 산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1992년에는 무재해운동 1000만명 서명운동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신원장은 삼성전자에서의 활동에 그치지 않고 협력회사 안전관리 지원활동을 전개해 협력사 안전관리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로 재해율을 낮추는데 기여했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1997년 아카데미교육과정을 개설해 안전보건전문가 21명을 배출했습니다.
또한 전자제조업의 위험관리분석(E-HAZ OP)을 개발해 국내 사업장에 보급하는데 노력했습니다.
1995
산업안전보건법이 1981년 제정된 이래로, 1995년 법개정에서 산업안전관리, 산업보건관리, 작업환경측정 전문기관의 지정 요건을 시행령으로 구체화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저희 기관과 같은 서비스가 가능해졌고, 많은 사업장들에서 더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1999
한국안전환경연구원 설립
“안전전문지식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본 연구원에서는 산업재해 예방기술을 개발하고 국내 협력기관과 해외협력망을 통한 안전 기술과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겠습니다.”
“ 안전사회를 추구하는 실천적 시민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안전문화정착에 혼신의 힘을 쏟겠습니다.”
- 신문진 원장 인터뷰 (매일경제신문 1999.12.10)
1999년 12월 안전경영대상, “어떤 것도 인명보다 앞설 수는 없다”
공로상 부문에서 신문진 한국안전환경연구원 원장이 상을 받으셨습니다.
1999년
-
1999년㈜한국안전환경연구원 설립
경인지방노동청 수원지청 보건 / 작업환경측정기관 지정
경인지방노동청 보건관리 / 작업환경측정기관 지정
지방노동청 안산지청 보건 / 작업환경측정기관 지정
수원제1999-01호
200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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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보건관리대행 소규모사업장 국고 사업 인증
안전경영평가기관 지정(한국산업안전공단) -
2001년경인지방노동청 수원지청 안전관리대행기관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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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안전관리대행 소규모 사업장 국고 사업인정
재해예방전문지도기관 지정(경인지방노동청)
재해예방전문지도기관 지정(서울지방노동청) -
2004년경인지방노동청 안산지청 안전관리대행기관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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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 보건 / 작업환경측정기관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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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경인지방노동청 평택지청 안전관리대행기관지정
경인지방노동청 평택지청 보건 / 작업환경측정기관지정
201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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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중부지방고용노동청 보건관리대행기관 지정서(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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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중부지방고용노동청 보건관리대행기관 지정서(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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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중부지방고용노동청 보건관리전문기관 지정서(변경)